2020-06-27 12:34  |  문화ㆍ라이프

[여성교육 ⑨] 일제감정기의 여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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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A 김태운 기자] 여성교육은 시대를 반영한다. 당대 사회가 함의한 여성관을 엿볼 수 있다. 여성교육을 해부하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달라지는 기본 사상이나 교육 실태를 확인 가능하다. 여성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교육 소수집단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여성은 남성과 다른 교육을 받아왔다. 제도권 교육에서 여성은 제외돼왔다. 이들을 제도권 우산 아래로 들이는 과정에서 당시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이유다. 역사적 관점에서 여성교육의 변천사를 알아보자.

▲ 일제감정기의 여성교육

1910년 국권상실 후, 여성교육은 일제 관리 하에 들었다. 1911년과 1915년 사립학교규칙이 공포하며, 일제는 학교들 내 교육 내용부터 시설까지 감독했다. '조선교육령'도 내놨다.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세운다는 내용이었다. 숙명여학교와 진명여학교가 먼저 여자고등보통학교로 개편됐다.

일제는 종교교육을 금지했다. 학교와 학생들은 성경교육과 종교의식을 할 수 없었다. 이화학당 등 기독교계 여학교는 반발했다. 일제는 끝까지 종용했다. 1913년 이화학당을 시작으로 1918년 호수돈여학교, 1920년 정의여학교 등 기독교계 여학교들도 여자고등보통학교로 개편됐다.

일제가 만든 제도 하에, 여학교들은 위치를 달리했지만,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계몽주의적 기운은 만연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여성 선각자들과 여학생들이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자리했다. 그 외 항일독립운동에도 언제나 함께했다.

여성들은 전국을 돌며 강연과 야학 활동을 했다. 일제 말기로 접어들며 태평양 전쟁으로 여성교육이 제도권 내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여성들의 교육활동은 끊임없이 전개됐다. 교육을 받는 여성 수도 점차적으로 늘었다. 1925년 8만여 명에서 1935년에는 17만 7,000여명까지 규모가 커졌다. 여성교육이 교육의 일면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교육에서의 양성평등을 이룩했다. 헌법은 평등교육을 실현하는 초석이었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정절 교육에서 시작된 여성교육이 조선시대 수모와 역경을 거쳐 국민의 권리로서 자리하게 된 것이다.

김태운 기자 kimty@global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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